학교


옛날이야 모르겠지만 지금 신입생으로 들어오는 후배들을 바라보면, '와 정말 서울대 가기가 힘들구나'라는 생각을 한다. 중고등학교때 내내 노느라 내신 관리도 안하고, 덕분에 남들 다 타는 이공계 장학금도 고등학교 내신 때문에 못탄 나는 말 그대로 '수능 대박'의 막차를 문닫고 탄 운좋은 케이스라고 생각한다. 의대 열풍이 시작되어 그 열기가 한창 타오르던 2002년. 철없이 학교에 가기 싫다며 편하게 놀고 싶은 생각에 시작한 수능 공부가 대박이 나서 서울대에 들어갈 수 있었다. 당시 다른 군에 지원해서 등록했던 의대 등록금을 환불받고 상대적으로 싼 등록금을 내러 학교 농협에 갔을 때, 아버지께서 하신 '등록금이 싸서 좋다'라는 말씀은 아마 내 평생 잊혀지지 않는 장면 중 하나가 되리라.

최근에 tvN이란 채널에서 '80일만에 서울대가기'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방영하는 모양이다. 공신으로 이미 공중파를 몇번 탄 과 후배도 여기에 출연하고 왔다고 한다. (자세한 비하인드 스토리는 생략)
서울대라는 학교는 이미 학교 이름을 넘어 수능이 줄 수 있는 최고의 목표라는 상징적 의미도 더해졌고 그 의미가 전 국민을 상대로 통하기 때문에 이런 제목이 가능하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글쎄.. 80일만에 서울대.. 내가 2002년에 수능 공부를 9월 말부터 시작했으니 1달 반정도 공부했다 치더라도 45일만에 서울대를 간 셈이니 80일이면 충분한 시간 같다.



80일만에 서울대 간다?

과연 80일만에 서울대를 갈 수 있을까? 우선 내 대답은 'ABSOLUTELY NOT!'이다. 글쎄 '80일만에 서울대가기'라는 문장이 어떤 것을 의미하는 지는 방송을 만드는 작가와 PD가 알겠지만, 아무런 전제도 없이 80일만에 서울대를 간다? 현재 기여금입학제도 없는 서울대의 입시 관문을 80일만에 통과할 수 있는 어떤 방법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출처 : http://www.chtvn.com/VR/sundayten/index.asp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공부 안하던 사람이 80일만 공부해서 서울대 갈 정도의 수능 점수를 받을 수 있단 얘긴가?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건 하나의 종교가 되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80일만에 그 정도의 내공과 과거의 내신을 고칠 정도의 힘이라니.. 미스테리가 아닐 수 없다.



80일만에는 절대로 불가능하다.

2001년 12월 28일, 카니발 프로젝트의 '그땐 그랬지'의 노래 가사처럼, 시린 겨울 맘조리던 합격자 발표날에 부등켜 안고 어른이라고 생각하던 무렵, 그 다음해 2월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기 무섭게 과외 전선에 뛰어들었다. 나름 대학생이니 내 용돈벌이는 해보자는 심산이었다. 그때부터 줄곧, 군대에 있었던 2년의 시간을 제하고, 학교를 핑계로 잠시 쉬었던 몇달을 제외하고는 내내 과외학생과 일주일에 2~3번씩 마주쳤다.

내가 가르쳤던, 나에게 과외를 받았던 학생들에게 공통점을 발견한다면, 그것은 과외가 필요한 이유일 것이며 과외가 필요한 이유는 공부가 부족해서, 혹은 공부하는 데 도움이 필요해서이고, 필요한 도움은 공부를 잘 못하기 때문에 필요한 도움일 것이다. 모든 학생들이 가지고 있었던 공통점이지만, 예외였던 단 한명을 만나기 전까지는 알지 못했던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그것은 무엇이냐. 바로 '혼자서는 공부를 집중해서 잘 하지 못한다'이다. 가장 기본적이면서 가장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현재 나에게 주어진 문제이기도 하고..

물론, 과외를 받으면 공부를 더 잘 할 수 있는 기회와 여지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실제로 학교를 다녀보면, 강남권이나 8학군, 상계동 쪽 교육열이 높은 지역의 학생들이 많은 것을 매우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런 지역에 사는 학생들은 어려서부터 선행학습을 통해 이미 고등학교 과정을 몇번씩 배운 상태이고, 더 나아가 대학교 과정의 내용도 배우고 있는 학생들도 적지 않다. 실제로 입학해서 서울대를 다니고 있는 학생들을 기준으로 보았을 때, 서울대에 들어가기 위해서 수험생들이 경쟁해야 하는 상대는 바로 옆 친구도 아니고, 중고등학교때부터 계속된 반복학습으로 충분한 내공이 쌓여 있는 학생들이다. 거기에 자기보다 1년 더 공부한 재수생, 삼수생, n수생까지.. 80일만엔 절대 불가능하다.

오케이 좋다. 80일만에 가능하다고 하자. 그렇다면 정말 세상은 불공평한 것이다. 어찌 그간 놀지도 않고 공부만 매달리며 수능날을 손꼽으며 모의고사와 실전문제를 풀던 학생들에게, 그리고 중간고사 기말고사를 소홀히 하지 않고 평상시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중요하다고 찍어주는 것들 하나하나 정리하며 공부하던 학생들에게 '단 80일만의 노력'으로 그들 '평생의 노력'과 동등해지려 한단 말인가. 나는 이 점이 정말 맘에 들지 않는다. 이러한 '80일의 노력'으로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는 허황된 꿈. 일찍부터 그런 것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소위 '대박'을 노리는 꿈. 죽을때까지 로또를 사다가 마지막 복권마저 당첨되지 않았을 때, 막장으로 치닫는 어른들의 모습과 다를게 없다고 생각한다.

2002년에 내가 수능을 보기 위해 공부한 시간은 한달 반정도 되지만, 내가 한달 반만 공부해서 수능 대박이 나기 위해서 나는, 연합고사를 치기 위해 중3때부터 야자 했고, 밤 12시까지 학원에서 각목과 죽도 등으로 맞아가면서 공부했다. 지금 생각하면 도저히 말도 안되는 이야기지만, 나는 이러한 공부 방법이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런데 이런 내 노력을.. 뭐? 80일만에? 웃기고 자빠진소리다.. Go f**k yourself.



그렇다면 80일 동안에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앞에서 서울대에 다니는 강남의 잘나가는 지역 출신의 친구들과 후배들의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그와는 반대로 지금 소원해진 가까웠던 친구 중에 독학만으로 수시 입학해서 매우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친구가 있다. 이 친구의 경우 대학생활 내내 독학으로 열심히 공부해서 졸업할 때까지 자기 스타일을 유지함으로써 좋은 성적을 유지했다. 딱히 서울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천재스타일은 아니고, 자기 스타일을 유지하는 자기관리가 뛰어난 친구였다.
승리하는 고3생활과 패배하는 고3생활은 무엇일까. 앞에서도 지적했 듯이 그것은 스스로 하는 공부의 차이이다. 스스로 공부하는 것은 스스로를 이겨내는 힘, 스스로에게 동기부여하는 힘이 필요하다. 80일동안에 공부 한자 더 보고 책 한권 더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조금 더 자기를 위하는 것, 그리고 그것이 자연스럽게 자기 스스로를 움직이는 힘으로 이어지게 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된다면 공부 한자 볼 것을 한 페이지를 보게 되고, 문제집 한 권 풀 것이 오답노트까지 만들게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것이 정말 인생에 필요한 것임을 알 때, 수능을 치고 사회로부터 법적으로 어른으로 인정 받는 새내기 대학생들에게 큰 힘이 될 것이다.







앞으로 Math란 카테고리에는 그동안 수학 과외를 하면서 학생들이 어렵게 생각하는 개념이나 문제 등을 쉽게 풀어보고자 한다. 과외는 오래 했지만 그럼에도 남는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 학교를 핑계로 과외를 그만둔 적이 있었다. 부정적인 생각을 떨치고 그것을 기록으로 남겨보면 어떨까 라는 생각은 오래전부터 해왔으나 이 역시 귀찮다는 핑계로 미뤄만 왔다.
이제 그것을 조금씩 조금씩 쌓아가면 훗날 내 자식이나 조카에게 유익한 것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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