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 히어로즈가 휴방 상태고, 이를 대체하기 위해 심심할 때면 1박 2일을 조금씩 봤다. 시청자 투어편이 재밌어서 그 앞뒤로 조금씩 보다가, '무한도전'에 비해 느껴지는 PD와 메인 MC 강호동의 왠지 모를 어색함? 리얼하지 못함에 조금 식상함을 느끼고 아쉬워하던 차였다. 물론, 다른 연기자들(차라리 김C가 어색하지 않더라)은 매우 호감적이다.. 이승기부터 시작해서.. MC몽, 이수근, 그리고 늦게 합류해서 열심히 하는 모습 보이는 김종민.. 솔직히 은지원(아이돌 출신의 가수가 그룹 해체후 힙합을 한다는 선입견-당시 아이돌 해체 후 문모씨가 있던 때라-과  박모 가문과 관계 있어 그 힘을 좀 써서 방송 타고 크루 합류하는 게 아니냐는 어설픈 편견)에겐 조금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었는데, 1박 2일을 통해서 매우 좋아진 것 같다..


1박 2일의 부족함을 채워줄 프로그램은 우연히 보게 된 '남자의 자격'이란 예능 프로다. 뭔가 초창기 무한도전을 표방하는 듯한 '맨땅에 헤딩'을 추구하면서도, 멤버들 간의 사회적 서열, 분위기에서도 공감되는 부분도 있고, 또한 '평균 이하(이긴 하지만 다들 한 분야에서는 최고임에는 의심하지 않는다.)'의 사람들로 구성된 멤버들이 보여주는 도전들.. 그리고 성취를 통해 보여주는 감동.. 그리고 남자들의 우애.. 배려.. 존중..


또한, 요새 새로이 등장하는 사업 아이템 중의 하나가 바로 '추억 장사'이다.. 기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추억. 그 추억을 되살릴 수 있는 아이템들을 현재 다시 만날 수 있게 하여, 동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추억을 되살려주고, 그 이후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앞 세대의 감성을 전달할 수 있는 형태인 것이다. '남자의 자격'에는 그러한 '추억 장사'의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 멤버들의 평균나이 40.6세(2009년에 39.6세였으니)라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멤버 중, 이경규, 이윤석, 김국진.. 이 세사람은 비슷한 시기에 등장해서 그 시대를 풍미했던 개그맨/코미디언이기도 하다.. 이경규, 이윤석이야 그동안 꾸준히 활동했다고 하지만, 그 둘의 각별한 관계가 둘 사이의 오랜 관계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관계가 시작된 90년대 초반, 비슷한 시기에 전성기를 누리던 김국진.. 훗날 김국진은 좋지 못한 여러 사건들에 휘말리며 잠시 활동을 중단하다가, MBC '라디오스타' 초반에 보여주던 약간 겉도는 이미지를 탈피, '남자의 자격'에선 다시 예전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 하다.


'남자의 자격'을 조금씩 보기 시작하면서 느낀 것이 하나 더 있다면 '아.. 그동안 유재석에 가려 규느님을 잊고 있었구나..'라는 것이다.. 한때 한 decade를 풍미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이경규의 인기는 대단했는데, 특히 주말에 그의 기세는 대단했다.. 그를 앞세운 멤버 구성은 제작진의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장담할 수 있다.


거기에 걸어다니는 자체로 몸개그이지만 대한민국 3대 기타리스트(이 부분에 대한 태클은 이 글의 주제를 벗어나므로 사양하겠습니다.)에 꼽히는 김태원.. '역시 사람은 한 우물을 제대로 파고 나서야 다른 것을 해야 간지가 나고 카리스마가 뿜어져 나오는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리고 다른 멤버들(이정진, 김성민)에 대한 코멘트도 정말 많지만, 나는 왕비호, 윤형빈에 대해 몇마디 적어보고자 한다.. 나에게 윤형빈은 그냥 깡 좋은, 그리고 더 이상 해먹을게 없는 개그판에 막장 카드로 들고 나온, 지능적 역안티팬을 공략하는 개그맨 정도로만 인식했다. 가끔 왕비호에 대한 인터넷 기사가 뜨면 그 부분만 따서 보고, 태연의 친한친구에 잠깐 고정으로 나왔었던 것만 기억할 뿐 그냥 뭐 다른 사람 깔 것이 순식간인, 그거로 먹고 사는 그런 개그맨으로만 느껴졌던 게 사실이다.
역시 그 바닥은 빡센걸까.. 이번 무한도전 '오 마이 텐트' 편에서 유재석, 정형돈, 노홍철 세 명이 알레스카 설원에서 맨발 동계 올림픽을 하다가 발에 피나는 것을 보며 '와.. 역시 정말 빡세다'고 생각했었는데.. 윤형빈을 보면서 다시 한번 그런 생각을 한다..
한마디로 윤형빈은 싹싹하다. 싹싹하고 싹싹함을 넘어 거의 군대에서 이병이 상병들 대하듯 하나, 그 안에 느껴지는 진심이 방송을 통해 전해지는 느낌이다. '막내니까'라는 이유로 30이 넘은 나이에 이것 저것 잡일을 해야 하는 고충은(물론 규느님은 60년생 79학번이시지만)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촬영하는 내내 형들을 뒷바라지 하고 자신은 뒤에 좀 물러서 있어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어려울 수 있으나 자신의 차례가 되었을 때에는 왕비호 다운 거침없는 멘트를 내뱉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 중이다.
가끔 보다보면, 윤형빈이 조금 위험할 수 있는 발언을 내뱉는데 이게 듣는 사람 입장과 상황에서는 전혀 그렇지가 않다. 화면과 영상을 같이 보는 시청자라면 그런 것을 잘 느끼지 못할 수도 있을 정도다. 전공인 '다른 사람 까기'를 '남자의 자격'에서도 조금씩 발휘하곤 있지만, 그것이 형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거나 프로그램 전체의 분위기를 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아.. 사람들을 엄청 까다보니 이제 수위 조절도 자유 자제로 되나?'라는 생각이 들정도..


어쨌든 '남자의 자격'은 재밌는 것 같다.. 캐릭터들의 개성이 다들 각양 각색이고 어느 하나 겹치는 사람도 없을 뿐더러, 각자 맡은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와중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것 같다..


다음 포스트에서는 그간 방영된 방송 중 최고로 꼽혀도 손색이 없을 마라톤 편에 대해서 써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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