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들어가며

 "고등학교 입학시험을 치른다."라는 말은 이제 오래된 말인 것 같다. 내가 현재 사는 지역이자 고등학교를 나온 지역인 경기도 광명시는 아직도 매년 중3 학생들을 대상으로 고입선발고사인 연합고사를 치고 있다. 고입 전형은 200문제인 연합고사를 100점 만점으로 환산하고, 내신을 200점 만점으로 계산한 뒤 합친 점수를 가지고 진행된다. 기타 자세한 전형방법은 신입생 입학전형 요항(출처: 광명북고)을 참고하면 되겠다.
 12년전 나도 연합고사를 쳤다. 말도 안되게도 광명시 중학교중 유일하게 우리 광남중학교(경기도 광명시 광명동 385-5 소재)는 중3때도 저녁 7시까지 야자를 했다. 학력 수준이 미달되는 중학교였기 때문이다. 그 덕에, '저주받은 이해찬 1세대', '단군이래 최저학력'에 속했던 나는 중3때도 했던 야자를 고1 고2때 안하는 기이한 학교 생활을 했다. 당시의 입시 스트레스는 여러 기사에서도 말했듯 대단했지만, 그래도 이 중학교를 벗어나 내가 저 고등학교에만 들어간다면, 비슷한 수준의 학생들을 만나서 '문제 학생들'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 없이 학교를 즐겁게 다닐 수 있을 것 같았고, 실제로도 그랬다. 중학교때는 학기초 매번 진행되던 짐승들의 '풀리그' 스트레스가 있었는데, 고등학교 들어간 이후 주먹다짐 한번 한 적이 없었다.
 이제 이 지역에서도 옛말이 될, 올해 마지막 연합고사일에 고교 평준화에 대해서 몇가지 내 생각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1. 평준화를 찬성하는 입장들

  생각을 정리하기 전에 고교 평준화를 찬성하는 기사나 의견들을 몇가지 찾아봤다. 
  딱히 정치적인 성향을 따질 것 없이 전교조를 포함한 여러 사람들이 고교 평준화를 이야기하는 것 같다. 이유는 대개 비슷한데, 그것들을 몇가지 나열해보면,
  • 고입 스트레스
  • 평준화로 인한 학력저하는 없다.(오히려 상향되었다는 주장도)
  • 사교육비 절감
  • 평등한 교육 기회
등이 될 것 같다. 1974년 고교 평준화가 처음 도입된 이후 36년이 흘렀다. 이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었고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상태다.


2. 전국 900만의 아이들의 머리 속에 모두 똑같은 것만을 집어넣는 교육제도

  평준화를 반대하는 입장의 출발점으로 잡는 것은 학생들의 '수준차이'다. 모든 학생이 같은 수업을 듣는다 하더라도 알아듣는 바가 다르고, 그로 인해 수준차이가 발생하게 된다. '1+1=2'를 가르치면 어떤 학생들은 바로 알아듣고 '1+2=3'을 배울 수 있는가하면, 어떤 학생은 '1+1=2'를 계속해서 반복해줘야한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손해보는 것은 누굴까. 수학능력이 좋은 학생, 뒤쳐지는 학생, 가르치는 선생 모두에게 손해다. 학생을 지도한다는 일에 손해라는 것이 있겠냐만은 효율적이지 못한 시간을 보낸다는 측면에서는 손해라고 불러도 무방하다.(여기에 또 교육에 어찌 효율성만을 따진다고 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는데 그렇다면 교육제도는 왜이렇게 자주 바뀌는가. 학교 선생님 수는 왜 학생과 1:1로 맞지 않는가. 결국 효율성 문제)
  이러한 현실적인 문제를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어떤 교육제도 하에서든 잘하는 학생과 뒤쳐지는 학생 사이에 수준차이는 발생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학생들에게 똑같은 것을 가르친다는 것이다.


3. 비평준화. 진짜 문제인가?

  첫번째 링크 고입 연합고사 날, 다시 돌아본 고교평준화에 보면 글쓴이는 다음과 같은 논리를 전개한다.
학생의 본연은 공부이지만, 그것에만 충실하는 것은 문제가 된다.
비평준화 지역은 공부에만 충실하지만, 비평준화 지역 학생들은 학업에 대한 부담이 적어 공부 외에 여러가지를 할 수 있다.
그치만 성적은 평준화 이전에 비해 떨어지지 않는다.
뭔가 모순이 있다. 학업에 대한 부담도 적도 학생의 본업인 공부하는 시간이 적음에도 성적은 떨어지지 않는다? 게다가 학교에서 가르치는 내용은 평준화 전이나 후나 같을 것인데, 비평준화 시기에는 주입식 교육만이 강화된다? 심지어 평준화 이전에는 21세기 사회적 트렌드에 맞지 않는 수동적 학생만을 양산한다고 되어있다.
  글쎄.. 공부 잘하는 학생들끼리 모아서 학교를 운영하는 것이 어떻게 21세기 사회적 트렌드와 수동적 학생과 연관이 있는지 비약이 있는 것 같군. 아무래도 글쓴이는 '비평준화=주입식 교육'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가르치는 내용에는 평준화 전이나 후나 큰 변화가 없는데도.
  또한, 평준화가 교육 기회를 균등하게 부여한다고 했는데, 그래서 강남과 목동, 노원구 등 교육열이 강한 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이 나뉘게 되는 것인가? 그래서 자녀 교육 때문에 총리 예정자는 청문회에서 '맹부삼천지교'를 시인하게 되고 청와대도 그것을 인정 하는 것인가 말이다.
  물론 학력에 대한 부담감을 덜어주는 것은 사실이다. 왜냐면 딱히 공부 열심히 안해도 고등학교 잘 보내주거든. 하지만 그렇다고 그게 더 큰 스트레스인 대입 수능에 대한 부담감을 줄여주느냐? 그것은 아니다. 연합고사를 본다해도 대입 부담감이 줄어드는 것은 마찬가지로 안니다.

 세번째 링크 학벌철폐] 교복이 낙인이 되는 곳에 보면, 광명시의 이야기가 나와있는데, 광명시에 내 평생 중 첫 6개월과 군대 2년을 제외하고 나머지를 보낸 사람으로서 동네 사정을 잘 반영하지 못하고 현실적이지 못하다. 그저 고입을 까고 들어가는 색안경을 끼고 보기 때문에 그렇다. 게다가 광명시에 있는 학원에서 일도 해보니 더욱이 현실과 다름이 느껴진다.
 같은 글에서 평준화로 인한 학력 저하의 근거는 없다고 하면서, 단지 '좋은' 대학에 진학한 학생 숫자에만 근거한 상향평준화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면서 사교육비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저 '좋은' 대학에 진학한 학생들은 사교육을 안받았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이건 정말 신문기사(<수능 세영역 만점 임수현 양 "학원 한번 안갔죠">)에나 날법한 학생들을 200명 정도 데리고있다는 이야기다. 실로 강남권 아줌마들에게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또한, 평준화 지역에서는 수능이나 논술을 대비하면서 폭넓게 공부한다고 하는데, 수능이나 논술이 어찌 폭넓은 공부가 된단 말인가. 난 또, 21세기형 트렌드에 맞춘 '봉사하는 학생', '글로벌 인재 육성 과정', '학업 외에 대학 과정의 공부하는 학생', '책을 읽고 독서토론회'등이 이루어진다면 모르겠다. 현실은 어떠한가. 어차피 평준화 지역의 고등학생들도 대입 앞에서는 어쩔수 없다. 앞서 이야기한대로 단지 1년 늦춰지는 것이다.
  고교 평준화를 외치는 부모님들, 그렇게 따지면 고교 평준화보다 중요한 것이 대학교 평준화입니다. 고교 입시보다 더한 스트레스는 대입 스트레스입니다.


4. 잘하는 학생은 더 잘할 수 있도록 면학분위기를 조성해야

  평준화를 반대하고 비평준화를 지향하는 가장 큰 이유는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공부하는 면학 분위기를 조성해 주는 것이 교육의 기회를 균등하게 부여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평준화의 모순은 '모든 학생에게 같은 공부를 시킨다.'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한 반에서도 같은 수업을 들어도 알아듣는게 다르고 학업 성취능력이 다르다. 그러한 개인차를 무시하고 '모든 학생에게 같은 공부를 시킨다'는 것 자체가 모순 아닌가.
  또한, 모든 학생이 고등학교 졸업 후에도 계속해서 공부를 한다는 착각을 가지고 있다. 요새 추세로는 대부분 대학을 가겠지만, 대학을 가는 과정에서 일부는 지속적인 공부를 하지 않고 다른 진로를 택할 수도 있다.
  만약 고등학교 교육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갖춰야할 기본 소양을 가르치는 교육이라고 한정한다면, 평준화 제도가 말하는 부분은 어느정도 맞을지도 모른다. 허나 현재 고등학교 입시 상황의 주된 목표가 기본 소양 뿐만 아니라 그것을 평가하는 '대학 수학 능력 시험'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상황에서 모든 학생이 같은 공부를 해서 같은 학업 능력을 보인다면, 무엇으로 변별력을 갖춘단 말인가. 다른 아이들보다 내 자녀는 더 좋은 학업성취를 보이게 하려고 잘 사는 사람들은 더욱 더 사교육을 시키게 된다. 아무리 막아도 어차피 시킬 사람은 시키고, 그 사람들 보고 나머지 사람들도 따라가고, 잘사는 사람은 더 시키는 악순환이 반복되는게 현재 상황이다. 고교 평준화를 포함한 제도적 장치로 사교육비를 경감시킨다는 것은 눈가리고 아웅인게, 어차피 할 사람들은 다 한다. 오히려 진짜 돈 많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게 되어 그로 인해 교육 격차가 나게 할 수도 있다.
  고교 서열화를 통해 위화감이 조성된다고 했는데, 마치 대학에서는 그렇지 않은양, 사회에서는 그렇지 않은양 말한다. 짧지만 30년 조금 부족한 삶을 살아보니 어차피 서열화 되고 위화감과 상대적 박탈감 속에 살아가는 것이 세상살이인 것 같다. 어차피 고등학교 다니면서 모의고사도 칠텐데 한반에 ±4~5등급 정도로 스펙트럼이 나뉠 것이 1~11등급까지 전구간 스펙트럼으로 나뉘게 되면 이 역시 위화감을 조성하는 것 아닌가. 성적에 신경쓰지 않는 학생들에겐 무의미한 숫자에 불과하겠지만, 그렇다면 이런 학생들에게도 1등급의 학생들과 같은 수업을 한다는게 말이 되는 소리냐는 앞의 논점으로 되돌아오게 된다.

  일반 고등학교에서도 특목고 못지 않게 학업 성취도가 높은 학생들이 많이 있다. 이러한 학생들에게도 특목고와 같이 잘하는 학생에게 더 많은 교육의 기회를 주고, 잘하는 학생들끼리 모여 같이 공부하고 열심히 공부하는 면학 분위기를 조성해주는 것이 어른들의 몫이 아닌가 싶다. 이러한 분위기가 한번 형성되고 잘 유지된다면 선생의 역할은 그야말로 대폭 축소될 수 있다.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하는 유토피아적 면학 분위기. 유토피아는 현실에서 존재할 수 없지만, 이러한 면학 분위기는 충분히 조성 가능하다. 실제로 목격도 했고.
  백년대계 교육의 핵심은 단순한 지식의 전달을 넘어, 면학분위기 조성, 그리고 더 나아가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학생이 졸업하고 사회에 나갔을 때, 어느 위치에 있든 자신의 본분에 최선을 다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 아닐까. 수동적 학생, 21세기 트렌드에 맞지 않는 학생? 그런 것은 교육 내용 자체에서 문제점을 찾아야지 평준화 비평준화로 따질 문제는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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